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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삶
작성자 dream 등록일 2019-05-30 16:20:55 조회수 59


 품격 있는 삶

 

 이강순 권사

 

  다산 정약용은 천재였고, 넓은 도량의 사람이었다. 천재가 흔히 갖기 쉬운 결점은 속단과 경솔함이라 흔히들 말하지만 그에게는 이러한 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자부심이 강하고 자존에 차 있었지만 결코 남을 비난하지 않았다. 조상이 당쟁의 중심인물이 되지 않았음을 자랑스러워했고, 아들에게도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문벌 타파를 열렬히 주장했고 인재의 고른 등용을 역설했다. 자신을 몰아내려는 벽파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붓지 않았다. 오히려 소외된 이들을 감싸주었다.

  정조는 그런 다산을 신임했다. 암행어사, 규장각 학사나 승지 등을 맡기면서 늘 옆에 두었다. 자신이 신임하는 다산을 민란이 자주 일어나는 황해도 곡산부사로 보내기도 했다. 그곳에서 민생을 구제하고 누적된 폐단을 바로잡는 성과를 거두게 했다. 잠시 외직에 보낸 것은 참소하고 시샘하는 대신들의 불길을 진정시키려는 정조의 배려였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엘리트관료 다산은 결국 반대파의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미관말직으로 좌천되었다. 억울하게 유배 되었지만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았다. 굴욕과 탄압 속에서도 마음만은 자유를 만끽하며 저서 편찬에 힘썼다. 또한 폐족의 설움을 안고 사는 어린 자식들을 향한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아버지로서의 다산을 엿보게 했다.

  다산을 향한 시샘의 화신이 되었던 대신들은 방대한 그의 업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숱한 권모술수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그를 보고 역시 큰사람이라고 속으로 감탄하지 않았을까. 처형의 위기에 놓였지만 민생들의 항소로 위기모면이 됐던 것은 평소 다산의 인품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명문가의 자제로서 품격 있는 삶을 구가했던 그가 이즈음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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